이 책은 읽고 내가 여러가지로 배울점이 많아서 길지만 이렇게 써놓고 나중에 또 보고 싶다.
요즘은 책을 읽고 조금 지나면 "내용이 뭐였더라?" 한다는 ㅎㅎ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 다른 사람의 아픔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사람보다, 다른 이들을 변화시키려고 애쓰느라고 괴로움을 당하는 이들이 더 많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 일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함정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변화 속으로 이끌어들일 수 없으므로, 자신을 변화시킴으로써 그들의 파괴적인 영향력이 더이상 우리에게 미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들을 대한는 방법을 바꾸라. 그러면 그들은 자신들이 과거에 사용한 방법이 더이상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변화하려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또다른 방법은 우리가 건강한 상태를 회복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그 사실을 주목하고 부러워하게 하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이미 이룬 일들을 따라하려 할 것이다.
한 가지 더 있다. 우리는 자신에게 속한 일고 속하지 않은 일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특히 나!)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영역과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할 영역 사이의 차이점을 깨닫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라...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이, 우리는 올바로 성장해나가기 위해 다른 이들과 대치하거나 그들로부터 진리를 지켜내야 할 때가 있다.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결국 그런 말들은 우리에게 유익을 가져다줄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지혜로운 이들이라면 그와 같은 부정적인 말들로부터 교훈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친구의 진심어린 충고는 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에게 유익한 도움을 준다.
그런것 같다. 처음엔 상처를 받지만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면 내가 왜 그런 말을 들어야 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므로. 나도 지난번 여행 갔을때 함께 간 동생뻘 자매에게 호되게 당했다. 당했다면 좀 우습지만 내가 무엇을 고쳐주려고 했다가 그로인해 대단한 말갚음?을 들어야 했다. 사실 내가 누구를 판단한단 말인가. 내 자신이나 잘하면 되는거지...
우리는 다른 이들의 뜻에 맞섬으로써 생겨나는 고통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또한 자신의 결정으로 인해 생긴 상처가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분별해야 하고, 다른 이들을 위해 그리고 그들과의 관계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요즘 내가 직장에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있어서 그런지 이 책에서 다룬 "직업과 인격 계발" 이라는 장이 마음에 들어왔다.
"... 크리스천은 직업에 대해 왜곡된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목회사역'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으면, 그사람은 세속적인 일을 한다고 여기는 크리스천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지극히 위험하다고... 모든 사람들이 다른 은사와 달란트를 받았다... 일은 영적인 활동이다. 우리가 하는 일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져간다. ... 크리스천이 되는 것은 인간 공동체 속에서 하나님의 협력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힘과 노력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완성을 발견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책임져야 할 일을 떠맡는 경우: 이것은 내 경우에도 잘 대입이 된다.
근무 시간 외의 지나친 업무: 나는 사실 이것에 대하여 많이 생각해 보았다. 특히 지금 회사에 일하면서는 더욱 더. 왜냐하면 지난 몇달 ,Tape out 할때마다 너무 늦게까지 그리고 일주일 내내 일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아무리 일을 하고 싶고 돈이 필요해도 그렇게 계속 오랜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실 큰회사인 인텔이 우리를 사면 좀 괜찮아 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보았는데 아직까지는 그럴 기미가 안보인다. 물론 일단 딜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만 그냥 그 보스에 그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오히려 예전에 받았던 보너스 같은 것만 없어지고 일은 일대로 해야되어서 더 힘들어 지지 않나 걱정된다. 미리 걱정할 필요 없겠지만서도... ^^
암튼 어쨋든 내가 당당히 얼마나 더 일할 것인지 결정하고, 일의 내용을 다시 잘 파악해서 일정을 잘 맞추어 계획하고(물론 내선에서 되지는 않겠지만) 과중한 업무는 내 보스에게 말을 해야 그도 알겠지. 그래야 미래에 어떤 희망이 보이지 안그러면 나혼자만 속으로 썩고 불만 생기고 만다.
그리고 일과 관련된 스트레스를 집까지 가져가지는 말자.
이 책의 결론으로 봐서 무슨 일이든 바운더리를 잘 세우고 실천할 것을 권면한다.
2011년 5월 17일 화요일
2011년 5월 13일 금요일
No! 라고 말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
원제: "Boundaries" by Henry Cloud & John Townsend 4월/11 - 5월/11 에 읽음
이 책을 읽으며 내 내 드는 생각이 성경을 이용해서 참 잘썻다 하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상세하게 예를 들은 이야기들은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으면서도 그런 사소한 일들이 또한 우리의 전체 살아가는 하루 하루의 모습들이기에 더 수긍이 가며 머리가 끄덕여 진다.
결론은 성경적인 건전한 자신의 바운더리를 제대로 세우고 지켜나가야 하는 것에 대한 책이다.
어떻게 보면 딱 부러지게 끊고 맺지 못하는 사람들 보고 하는 말인 것 같은데 사실은 가끔의 나도 해당된다.
이것은 오늘날의 크리스천들이 직면하고 있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홀로 지고 가기에 너무 무겁고 힘겨운 '짐'을 안고 있단다.
나도 얼마나 많은 경우에 "노"라고 해야하는데 못하고 어정쩡하게 예스를 해버리는 경우가 많은가?
어떨때는 내가 참는게 그냥 좋은 것이라 여겼다. 올바른 일을 하고 남들과 confront하는게 싫어서 내가 하기 싫으면서도 기꺼이 맡아한다거나 죄책감을 유발시키며 헌신을 강요하는 교회 지도자들의 메시지에 할수없이 끌려가다 시피 하는 경우등등.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일러주는 성경 말씀 :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마 22:37,39
우리 교회분중 한분이 이글을 읽으며 떠오른다.
본인이 스스로 농부라 부르는데 엔지니어로 직장생활 하시며 틈틈히 뒷마당에 농사를 지어서 정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상추와 고추등 나눠 먹고 또한 봄마다 모종을 분양하신다. 물론 공짜~로. 그런데 그 양이 정말 어마 어마하다. 무척 많은 우리 교인들 가정이 무공해 야채를 길러서 자급자족하고 있다.
물론 우리집도 그중하나이고. 지금 거의 십년을 그렇게 해오신것 같다.
이분 부부를 보면 정말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사는 본보기이신것 같다.
나는 너무 게을러서 직장같다오면 만사가 다 귀찮은데 말이다.
예전에 나는 슈퍼 우먼이라 불리우며 정말 여러가지 일들을 (지금 생각하면 신기할 정도임) 해 내었었는데 그런 정열의 나는 어디로 갔는가? 점점 더 나의 집중력은 떨어지고 스트레스는 예전처럼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지도 못한다.ㅠㅠ
이책을 읽으며 가장 놀라웠던 장은 "분리와 개체화: 개인의 형성" 이라는 챕터에서 다룬 어린 아기들의 자라면서 변해가는 심리상태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린나이에 분리와 개체화(separation and individuation)가 일어난단다. 이글을 읽으며 며칠전에 나보다 나이가 훨씬 어린, 예전 회사 동료 엔지니어와 점심을 먹으며 나눈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는 지금 3살 갓 넘은 딸이 하나 있는데 주로 만나면 하는 이야기가 자연히 애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야기를 들으며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도 더 똘똘해지는 것인지 어찌보면 영악해진다고 해야하나, 뭐 그런 생각이 들게 된다. 그러면서 아이와 struggle 하는 그집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음이 지어진다. 한편으론 젊은 사람들이 아이와 씨름하는게 귀엽기도 내 예전 생각도 나고해서.
요즘은 아이가 주로 하나라서 그런지 완전히 아이 위주로 그사람들 생활이 돌아가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 중요한 아이 시기에 우리 부모가 정말 잘 키워야 제대로 자기 나름의 바운더리도 잘 정하고 예스와 노우 도 분명이 할텐데 과연 나는 어땟을까. 다시한번 기회가 온다면 잘할 것 같은데 글쎄 막상 닥치면 또 똑같을지도 모를겠다는 생각도 든다. 진작좀 자식은 내 자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보물이라고 가슴깊이 새기면서 아이들을 키웠다면 좀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글쎄 앞으로 남은 시간이라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만큼 노력해야 되겠다.
성경은 사람들이 자신의 도덕적 나약함을 인정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알콜 중독자는 자신이 알콜을 이길 힘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들은 자제심의 열매를 거두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의 중독 상태를 이기지 못할 만큼 무기력하다. 바울 역시 자신의 무력함을 고백했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속에 있는 죄의 법 아리로 나늘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롬 7:15, 19, 23)
이것이야 말로 말 그대로 무력함이다.
요한은 우리 모두가 이런 상태에 있으며므 그것을 부인하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했다.(요일 1:8)
잠언 22:3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한다.
때때로 상황에서 물리적으로 멀어지는 것이 바운더리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적당한 한계를 정해놓은 후 육체적, 감정적, 영적으로 재충전하기 위해 일정한 지리적인 간격을 유지할 수도 있다. 또항 위험을 당하지 않기 위해 또는 죄악에 빠지짖 않기위해 그 상황이나 환경에서 스스로 멀어질 수도 있다.
To be continued...
이 책을 읽으며 내 내 드는 생각이 성경을 이용해서 참 잘썻다 하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상세하게 예를 들은 이야기들은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으면서도 그런 사소한 일들이 또한 우리의 전체 살아가는 하루 하루의 모습들이기에 더 수긍이 가며 머리가 끄덕여 진다.
결론은 성경적인 건전한 자신의 바운더리를 제대로 세우고 지켜나가야 하는 것에 대한 책이다.
어떻게 보면 딱 부러지게 끊고 맺지 못하는 사람들 보고 하는 말인 것 같은데 사실은 가끔의 나도 해당된다.
이것은 오늘날의 크리스천들이 직면하고 있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홀로 지고 가기에 너무 무겁고 힘겨운 '짐'을 안고 있단다.
나도 얼마나 많은 경우에 "노"라고 해야하는데 못하고 어정쩡하게 예스를 해버리는 경우가 많은가?
어떨때는 내가 참는게 그냥 좋은 것이라 여겼다. 올바른 일을 하고 남들과 confront하는게 싫어서 내가 하기 싫으면서도 기꺼이 맡아한다거나 죄책감을 유발시키며 헌신을 강요하는 교회 지도자들의 메시지에 할수없이 끌려가다 시피 하는 경우등등.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일러주는 성경 말씀 :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마 22:37,39
우리 교회분중 한분이 이글을 읽으며 떠오른다.
본인이 스스로 농부라 부르는데 엔지니어로 직장생활 하시며 틈틈히 뒷마당에 농사를 지어서 정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상추와 고추등 나눠 먹고 또한 봄마다 모종을 분양하신다. 물론 공짜~로. 그런데 그 양이 정말 어마 어마하다. 무척 많은 우리 교인들 가정이 무공해 야채를 길러서 자급자족하고 있다.
물론 우리집도 그중하나이고. 지금 거의 십년을 그렇게 해오신것 같다.
이분 부부를 보면 정말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사는 본보기이신것 같다.
나는 너무 게을러서 직장같다오면 만사가 다 귀찮은데 말이다.
예전에 나는 슈퍼 우먼이라 불리우며 정말 여러가지 일들을 (지금 생각하면 신기할 정도임) 해 내었었는데 그런 정열의 나는 어디로 갔는가? 점점 더 나의 집중력은 떨어지고 스트레스는 예전처럼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지도 못한다.ㅠㅠ
이책을 읽으며 가장 놀라웠던 장은 "분리와 개체화: 개인의 형성" 이라는 챕터에서 다룬 어린 아기들의 자라면서 변해가는 심리상태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린나이에 분리와 개체화(separation and individuation)가 일어난단다. 이글을 읽으며 며칠전에 나보다 나이가 훨씬 어린, 예전 회사 동료 엔지니어와 점심을 먹으며 나눈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는 지금 3살 갓 넘은 딸이 하나 있는데 주로 만나면 하는 이야기가 자연히 애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야기를 들으며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도 더 똘똘해지는 것인지 어찌보면 영악해진다고 해야하나, 뭐 그런 생각이 들게 된다. 그러면서 아이와 struggle 하는 그집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음이 지어진다. 한편으론 젊은 사람들이 아이와 씨름하는게 귀엽기도 내 예전 생각도 나고해서.
요즘은 아이가 주로 하나라서 그런지 완전히 아이 위주로 그사람들 생활이 돌아가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 중요한 아이 시기에 우리 부모가 정말 잘 키워야 제대로 자기 나름의 바운더리도 잘 정하고 예스와 노우 도 분명이 할텐데 과연 나는 어땟을까. 다시한번 기회가 온다면 잘할 것 같은데 글쎄 막상 닥치면 또 똑같을지도 모를겠다는 생각도 든다. 진작좀 자식은 내 자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보물이라고 가슴깊이 새기면서 아이들을 키웠다면 좀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글쎄 앞으로 남은 시간이라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만큼 노력해야 되겠다.
성경은 사람들이 자신의 도덕적 나약함을 인정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알콜 중독자는 자신이 알콜을 이길 힘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들은 자제심의 열매를 거두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의 중독 상태를 이기지 못할 만큼 무기력하다. 바울 역시 자신의 무력함을 고백했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속에 있는 죄의 법 아리로 나늘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롬 7:15, 19, 23)
이것이야 말로 말 그대로 무력함이다.
요한은 우리 모두가 이런 상태에 있으며므 그것을 부인하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했다.(요일 1:8)
잠언 22:3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한다.
때때로 상황에서 물리적으로 멀어지는 것이 바운더리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적당한 한계를 정해놓은 후 육체적, 감정적, 영적으로 재충전하기 위해 일정한 지리적인 간격을 유지할 수도 있다. 또항 위험을 당하지 않기 위해 또는 죄악에 빠지짖 않기위해 그 상황이나 환경에서 스스로 멀어질 수도 있다.
To be continued...
피드 구독하기:
덧글 (Atom)